아라울은 그를 ‘한야 선배’라고 불렀다. 학예원에서 접점이 있기는커녕 선배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자주 입에 담는 것은 아니었으나 말하는 투를 보면 근황을 알 정도로 꾸준히 연락하는 모양이었다. 한야. 전 지상조사과, 현 요새관리위원회. 길고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 작지만 꼿꼿한 체격. 오른쪽 팔뚝 중간부터 그 아래까지가 없었고, 따로 보조 기구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능력은 ‘매듭’으로, 다양한 성질을 가진 실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적을 구속하거나 아군의 이동을 보조하면서 적의 중심부로 파고드는 독특한 전법을 구사하던 강림. 손이 하나 없다 해도 지상조사과 잔류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기량과 이능력이었으나 부상 이후 스스로 적을 옮겼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이능력으로 요새관리위원회에서도 어엿하게 제 몫을 해 나가고 있는 베테랑 조합원이었다.

너, 그 애보다 커졌구나. 먼저 알아본 것은 한야 쪽이었다.

내가요? 아라울은 조금 멍청한 소리로 되물었다. 그야, 낮에 갑작스럽게 터진 문제를 수습하느라 불 꺼진 사무실에 둘만 한창 야근하던 중이었으니까. 한야 씨,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한야는 조금 뜬금없이 말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고, 아라울은 속으로 견습한테 이런 거 뒷수습을 맡겨도 되는 거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그 말을 이해할 뇌의 용량이 조금 모자란 상태였다. 한야의 푸른 눈이 아라울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눈이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한야. 짧은 침묵 끝에, 아라울이 어떤 경칭도 붙이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는 한야는 여전히 작네에.” “그런데 왜 못 알아보니.” “머리가 길어서. 원래 짧지 않았어~?” “짧았지. 나는 네 머리 꼴이 그래도 한눈에 알아봤는데. 친하다고 이름 막 부르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서라안도 서라안이라고 부르더니. 걔가 동생 버릇을 아주 이상하게 들여놨어. 가볍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친숙하고도 낯설었다. 아라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야를 바라보았다. 그것까지만 정리하고 가자. 그래도 돼에? 어, 나머지는 내가 내일 할게. 내일 해도 되는 거야~? 응. 그럼 우리 뭐 하러 야근한 거야…? 아라울이 조금 허망하게 되묻거나 말거나 한야는 아라울을 잡아끌었다. 갈 데가 있어.

한야는 갈 데가 있다고 사람을 끌고 나온 것치고는 오래 걸었다. 목적지가 멀리 있나 했더니 그보다는 딱히 없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아라울은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한야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았다. 너 그 애보다 커졌구나. 그랬던가, 서라안이 얼마나 컸더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서라안을 따라잡아 버리면 정말로 부재를 인정해야 하니까. 서라안이 스물다섯, 나는 스물하나. 이미 애저녁에 인정해 놓고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야의 발걸음은 섬 외곽의 숲에 닿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작은 별들이 점점이 빛났다.

“여기, 서라안이랑 자주 왔었어.” “그랬어~? 나는 처음 와 보는데.” “그야 둘이 데이트할 때만 왔으니까.” “데이트?!”

아라울이 기함하자 한야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농담. 깜짝이야아… 둘이 사귀었어? 아니라니까. 아니이, 뭐, 사귈 수도 있지… 농담이라고 하잖니, 지금. 둘은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웃었다. 아라울이 먼저 잔디밭에 풀썩 앉았다. 문득,

“나, 서라안 얘기 엄청 오랜만에 해. 그러니까, 나 혼자서 들려주는 거 말고…”